「국제 평화의 섬」 제주에서 평화를 말하다 김주희 참가자 파주, 나가사키, 타이베이. 그리고 제주 지난 6월, 파주 캠프그리브스에서 '글로벌 평화통일 리더' 활동의 서막이 열렸다. 50명의 경기 청년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모여 평화 문제에 관해 배우고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일본과 대만 조로 나뉘어 각자의 영역에서 평화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그렇게 2달이 지난 후, 우리는 제주에서 다시 모이게 되었다. 파주, 나가사키, 타이베이, 제주. 언뜻 보면 크게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곳들이다. 하지만 '글로벌 평화통일 리더'라는 활동의 이름을 생각한 후에 각 도시를 들여다보면 완전히 달라진다. 파주는 6.25 당시 북한군의 남침 경로 중 하나였고 전쟁 중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곳이며 여전히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접경지역이다. 나가사키는 1945년 8월 9일 역사상 두 번째 원폭 투하로 인해 7만 명이라는 막대한 인명피해를 입은 곳이다. 대만은 1949년 국공내전 이후 중국과 갈등을 이어오며 오늘날에도 미·중 대립의 중심에 서 있는 곳이다. 그렇기에 동아시아의 한중간에서 평화를 배우기에 너무나도 적합한 장소다. 제주는 어떨까? 흔히들 '제주'하면 떠올리는 것은 높다란 야자수와 귤나무,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한라산과 바닷가일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하지만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약 1년간을 제주에서 살면서 마주한 광경은 생각과 달랐다. 버스에 붙어있는 4.3 유가족 채혈 독려 배너, 중산간지대 개발을 둘러싸고 갈등하는 개발론자와 환경단체, 여전히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이어가고 있는 강정마을 사람들까지. 마냥 아름다운 섬으로 생각했던 제주가 생각보다 많은 문제를 당면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제주는 이번 활동의 마지막 답사지로서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곳이다. 제주는 2005년 국제 평화의 섬으로 지정되었으며 지금까지도 관련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이제 우리는 질문할 수 있다. 제주에서는 왜 평화를 이야기할까? 결국은 각 지역이 겪은 역사적 맥락 때문일 것이다. 나아가 그들이 겪은 역사적 경험을 새로운 정체성으로 승화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번 답사는 제주가 이야기하는 평화가 어디로부터 출발했는지, 그리고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자리다. 나아가 일본과 대만에서 배운 것들과 견주어보고, 한국이든 세계든 그 어느 곳에서든 자신이 생각하는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게 준비하는 자리다. 이를 위해 우리는 제주4.3기념관에서 김종민 이사장님을 만나 제주라는 지역이 4.3의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전해들었고, 김민호 변호사님을 만나 우리의 의견을 국제회의 현장에서 이야기하는 방법을 훈련했다. 또한 알뜨르비행장을 비롯한 제주의 유산을 둘러보았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이런 곳이 있었어?'하고 지나치기 쉬운 흔적들이기에 우리는 일상에서 우리의 안테나를 민감하게 세울 줄 알아야 한다. 나는 그런 훈련을 이번 제주 답사에서 해왔다고 믿는다. 제주4.3평화기념관 첫 번째 방문지는 제주 4.3 평화기념관이다. 나는 작년 4월 3일, 이곳에서 열리는 76주년 4.3추념식에 참석했다. 추념식에서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돕고 안내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제주민들에게 있어 4월 3일은 마음속의 짐이고 아픔인 동시에 떠나간 사람들의 얼굴을 하염없이 생각해보는 날이라는 것이다. 4.3 추념식장에는 버스가 잔뜩 줄지어 서 있었다. 중문동, 예래동, 가시리, 대흥동, 표선면 등 제주 각지에서 출발한 버스가 오로지 이곳에 모이기 위해 달리는 날이 4월 3일이다. 그만큼 제주민들에게 의미 있는 장소이기에 방문하게 되어 참 뜻깊었다. 제주 4.3 평화기념관을 돌아보며 관심이 갔던 건 건축물의 형태였다. 그릇 모양을 한 초록색 건물이 눈에 띄었다. 후에 찾아보니 제주민들의 아픔을 품어주기 위해 그릇 모양으로 지었다고 한다. 상징적인 건물인 만큼 설계를 할 때에도 의미를 담기 위해 노력한 점이 돋보였다. 내부 전시장에는 제주 4.3의 역사적 배경, 본격적인 발발 계기, 1947년 3월 1일의 발포 사건과 그로 말미암은 몇 년간의 전개 현황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전시장의 마지막 부분에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는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다. 한강 작가의 소설 중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사건을 주제로 쓰여진 소설이다. 제주민들에게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이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한반도 평화, 통일에 제주가 답하다_제주4.3평화재단 김종민 이사장 다음으로는 제주4.3평화재단 김종민 이사장님의 강연이 진행되었다. '한반도 평화, 통일에 제주가 답하다'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강연은, 이사장님이 언론인으로서 지난 37년 동안 취재해 온 제주 4.3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김종민 이사장님은 제민일보 기자로 일하며 <4.3은 말한다> 연재물을 직접 취재했으며, 진상보고서 작성 지원과 4.3평화공원 안내문 작성 등 관련 활동을 계속해 오셨다. 강연에서는 4.3 사건이 1948년 4월 3일 시작되어 1954년까지 7년 7개월간 지속된 한국 현대사의 최장기 비극임을 강조했다. 당시 제주 인구 27만 명 중 약 3만 명이 희생되었는데, 이는 제주 인구의 10% 규모였다. 가족이 몰살해 신고할 수 없거나 연좌제를 두려워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경우가 있음을 생각할 때, 제주 4.3의 피해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다. 4.3의 전개 과정은 크게 탄압, 항쟁, 대학살이라는 3개의 국면으로 나누어 설명하셨다. 1947년 3.1절 기념행사 당시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했던 데서 출발하여, 미군정이 경찰과 서북청년단을 앞세워 도민들을 검거하고 고문했던 것, 제주도로 인해 5.10 총선 이후 국회가 198석으로 출범하게 되자 브라운 대령이 진압 작전에 나서게 된 것, 해안선 5km 이외 통행금지령과 초토화작전으로 강경 진압이 시작된 흐름 등 주요 사건을 차례대로 짚었다. 오늘날 4.3에 대한 논의 과정도 설명하셨다. 민주화가 진전된 2000년에야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 특별법’이 제정되며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이 본격화되었다고 한다. 진상조사보고서 발간과 희생자의 공식 인정, 대통령의 4.3 추념식 참석 등의 사례를 통해 지금껏 4.3 관련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가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현대사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데에도 많이 공감했고, 한편으로는 제주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에 대한 언급도 인상 깊었다. 일제는 제주를 ‘움직이지 않는 항공모함’으로 삼아 요새화했는데, 지금도 당시의 비행장과 진지가 남아 있다. 지브롤터 해협처럼 제주도 역시 향후 동북아에서 중요한 전략적 거점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설득력 있게 들렸다. 마지막으로 제주 4.3은 단순한 지역적 사건이 아니라 분단과 이념 갈등이 낳은 한국 현대사의 상징적 비극이며, 동시에 제주는 평화와 통일의 길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공간임을 다시금 강조하며 강연이 마무리되었다. 평화통일 제안 발표회 이후에는 '평화통일 제안 발표회'가 진행되었다. 각 팀에서 제작한 숏폼을 공유하고 조별 프로젝트의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일본 팀에서는 각각 "공간과 문학의 서사를 통한 역사 인식의 재조명" "평화를 위한 장소 만들기" "기억의 정치학으로 보는 평화" "평화를 위한 나가사키의 교훈과 한반도의 미래"를 주제로 발표했고, 대만 팀에서는 "대만 정체성 형성과 현상 유지 전략" "대만 관광 패러다임 전환을 통한 양안 평화 구축 방안" "정치 너머의 평화" "공간의 평화적 재맥락화"를 주제로 발표를 준비했다. 각 조에서 열심히 조사한 내용을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특히 올해의 발표 주제에는 '공간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것 같다는 코치님의 말씀도 기억이 난다. 우리 조 역시 '평화를 위한 공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실제로 만든다면 어떤 공간이어야 할까?'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다른 팀이 '공간'을 매개로 어떻게 평화를 고민했는지 들으면서, 각자의 강점을 잘 결합하고 단점은 보완하여 그런 평화 공간을 현실로 구현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다. 발표가 끝난 후에는 숏츠와 발표 우수팀의 시상이 이어졌다. 2달간 열심히 달려온 팀원들과 동료들을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는 시간이었다.​ 제주국제평화센터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 둘째 날은 서귀포 내 평화 유적을 둘러보고 오늘날의 제주는 어떤 평화 정체성을 구축해 가고 있는지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첫 일정은 제주국제평화센터에서 시작되었다. 고개 숙여 인사해 주는 평화의 상징 '그리팅맨'이 우리의 방문을 환영해 주었다. 안으로 걸어 들어가다 보면 조금 특이하게 생긴 유리 온실 형태의 건물이 나온다. 건물의 모양은 제주도 주상절리를 형상화해서 지었고, 내부에는 평화 전시관, 평화 도서관, 그리고 평화를 연구하는 기관들이 있다. 전시실에는 '국제 평화의 섬'이자 동북아 교류사의 중심지로서 제주에 대한 전시가 준비되어 있다. 제주의 지리적 특징, 4.3을 비롯한 제주의 지난 역사, 제주가 국제적으로 해온 역할 등이 소개되어 있었다. 아래층에는 밀랍 인형 전시관이 있는데, 고르바초프 대통령이나 반기문, 김구 등 국내외 유명 인사들과 그들의 국제교류 활동을 밀랍 인형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제주에는 왜 국제 평화센터가 생기게 되었을까? 2005년 제주는 '국제 평화의 섬'으로 지정되면서 국제교류 및 평화 증진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데, 제주국제평화센터는 2010년 그 일환으로서 중문동에 설립되었다. 이곳 외에도 중문동 일대에는 국제회의와 국제교류를 위한 시설이 다수 입지해 있다. 예컨대 주상절리 바로 앞에 있는 둥근 건물은 제주국제컨벤션센터인데, 국내외 포럼과 국제회의를 개최하는 MICE 센터이고 이곳에서 올해 APEC 중소기업 장관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아마 중문동에 관광단지가 만들어지면서 호텔, 리조트, 식당 등 MICE 산업에 필요한 부대 시설들을 갖추고 있어서 부지로 선정된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국제 평화의 섬'으로서 제주의 활동은 얼마나 효과적이었을까?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도내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나의 지역을 '평화의 섬'이라고 명명하려면 그에 응당한 준비와 활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제주도는 자매결연, 국제회의 개최 등 도시 외교를 계속해 왔고 그 성과도 비교적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는 이미 제주가 20년간 비슷한 정책을 지속해 왔고, 이제는 새로운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 역시 그 의견에 동의하게 된다. 앞으로 제주가 평화와 도시 외교 측면에서 새롭게 낼 수 있는 임팩트는 무엇일까? 아직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정리해 가는 중이지만, 글로벌화와 로컬화를 동시에 잡는 것이라고 답하고 싶다. 제주는 전국 시도 중 가장 평균 임금이 낮은 지역이고 청년들도 많이 유출되고 있다. 현재는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다는 장점과 동아시아 대도시와의 접근성이 좋다는 점을 활용하여 국제협력 사업을 많이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인구 유출이 계속되는 한 제주도 내에 좋은 글로벌 인력을 유치하고 양성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을 것 같다. 이때 그나마 제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데에 도움이 되었던 전략은 바로 제주의 정체성을 살리는 것이었다. 제주에만 있는 자연환경, 독특한 로컬비즈니스와 독립서점 등 제주의 고유한 콘텐츠에 집중할 때 그 자체로 사람들이 매력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평화라는 것이 거창하게 들리기 쉽지만, 한라산-오름-지역문화와 같이 제주만이 갖고 있는 강점을 훼손하지 않고 지역사회, 나아가 전 세계 사람들이 누릴 수 있게 만드는 것도 일종의 평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제 평화의 섬 20주년을 맞은 제주가 앞으로 더 제주다운 평화의 형태를 고민해 나갔으면 한다.알뜨르비행장 ​다음으로는 더 서쪽으로 이동하여 대정읍에 있는 알뜨르비행장에 도착했다. 나는 '가장 제주를 닮은 동네'를 고르라고 하면 항상 이 동네를 고르곤 한다. 물론 어떤 동네든 제주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특히 이쪽 일대에 올 때 그렇게 느낀다. 제주의 생태와 역사를 오롯이 잘 보여주는 곳이기에 그렇다. 알뜨르비행장의 '알뜨르'는 제주도의 남단에 위치한 넓은 뜰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곳은 일제가 중국을 폭격하는 기지로 삼기 위해 건설한 군용 비행장이다. 당시 일본에서는 미군이 일본 본토를 공격한다면 어디를 발판 삼아 들어올지 조사했다. 가장 강력한 후보지 중 하나가 바로 제주도였다. 제주도에는 이미 비행장도 있고, 전투기를 타면 본토까지 몇십 분이면 오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은 미국의 본토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 방어계획을 수립하는데, 이때 제주도가 요새화 대상에 포함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알뜨르비행장은 일제강점기 당시 제주도의 입지를 잘 보여주는 곳이다. 알뜨르비행장에 도착하자 넓은 밭 너머로 콘크리트 격납고와 비행기 모형이 보였다. 예전에 지어진 격납고가 아직도 보전되고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격납고 안에는 다양한 색상의 끈으로 장식된 비행기 모형이 있었고 그 앞에는 이곳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한편으로는 알뜨르비행장이 개발되지 않고 이대로 남아 있는 이유도 알게 되어 반가웠다. 전날 김종민 이사장님이 말씀하시길, 알뜨르비행장은 해방 이후에 미국 군사기지가 되었고, 정부 수립 이후에는 국방부가 그대로 갖게 되어 지금까지 보전되었다고 한다. 다크투어리즘 장소로서 알뜨르비행장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계기였다. 용머리해안 다음엔 용머리해안으로 이동했다. 용머리해안에서는 산방산과 송악산, 마라도와 한라산까지 제주도의 자연유산을 한데 볼 수 있었다. 용머리해안 입구 쪽에서 서성거리며 풀을 뜯어 먹는 말의 모습도 정겨워서 좋았다. 아름다운 화산지형과 파도를 구경하는 것도 즐거웠지만 한편으로는 이곳도 평화와 연결 지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제주도에서 4.3 외에 또 중요한 평화 의제가 뭐냐고 묻는다면 아마 많이들 환경이라고 답할 것 같다. 용머리해안은 제주도의 최남단 지역에 위치해있다. 그만큼 기후변화에 취약하다. 실제로 해수면 상승과 기후변화로 인해 용머리해안의 관람 가능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2021년에는 종일 관람이 가능한 날이 1년 중 6일에 불과했다. 또한 송악산 일대는 오래전부터 개발 논쟁이 계속된 지역이다. 2013년에는 중국계 투자자가 리조트 건설을 추진했는데, 이때 보전 가치가 높은 송악산 일대에 휴양시설을 짓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개발 반대 운동이 시작되었다. 시민사회와 전문가들까지 반대 운동에 나서자 2020년 제주도의회는 사상 최초로 환경영향평가 부동의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처럼 용머리해안과 송악산 일대는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유적이 많을 뿐 아니라 환경 평화와 관련된 도내 논의의 최전선에 있다. 아름다운 파도와 자연이 빚은 해안절벽을 바라보면서, 다양한 평화의 형태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청년 평화 통일 정상회담 2일차 저녁과 3일차 낮에는 청년 평화통일 정상회담 세션이 진행되었다. 진행을 맡은 김민호 변호사는, 싱크탱크 운영자이자 로비스트로 활동하고 계시는 미국 변호사이다. 국제 비즈니스 현장을 직접 경험해본 전문가이자 협상 교육의 전문가셔서 즐겁게 들었다. 처음에는 우리가 맡게 될 의제를 설명해 주셨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 요구를 계속하는 상황에서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 EANATA 포럼을 출범했다'는 가상의 상황을 가정하고, 각 팀이 하나의 회원국을 맡아 국제회의를 진행하도록 했다. 회의의 주요 안건은 △새로운 이사국 추가 △회비 체계 결정 △2026년 포럼 개최지 총 3가지였다. 담당 국가는 캐나다, 프랑스, 일본, 대만, 튀르키예, 폴란드, 영국, 한국까지 총 8개국으로 정해졌다. 회의 방식은 실제 국제기구의 절차를 따르며, 의장 호칭이나 발언 순서, 영어 표현법 직접 써 보는 연습도 했다. 발표자는 영어로 입장을 정리해 발표하고, 나머지는 팀별로 전략을 짜 협상을 준비했다. 다른 나라를 설득하거나 연대할 전략을 세우는 과정에서 실제 외교 현장에서 벌어질 만한 긴장감과 협상술을 체험할 수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국제회의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국가 간 이해관계가 어떻게 부딪히고 타협되는지를 몸소 느낄 수 있는 값진 경험이었다. 영어를 활용한 발표와 공식 절차를 몸으로 익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강의실에서 듣는 이론보다 훨씬 생생했고, 실제 외교 현장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제주에 모인 경기 청년 모두가 이곳에서 배운 경험을 국제무대에서 잘 활용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마무리하며 지난 3일간 제주에서 다양한 형태의 평화를 고민해보는 시간을 보냈다. 4.3 평화기념관에서는 국가폭력이 남긴 상흔이 지금도 유가족과 공동체 속에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 알뜨르비행장에서는 일제의 군사적 요새화와 냉전의 잔재가 아직도 제주도에 자리잡고 있음을, 나아가 제주가 언제든 아시아의 거점도시와 군사적 충돌지점 사이를 오갈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송악산과 용머리해안의 환경 보전과 개발 갈등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평화 논제다. 이렇듯 제주는 다양한 층위의 평화 논제를 딛고 서 있는 곳이고, 바로 그 점에서 제주가 ‘평화’를 고민하기에 적합한 현장이라고 느꼈다. 특히, 이번 교육을 통해 도덕으로서의 평화가 아니라 국가폭력, 냉전, 국제 안보 등 우리가 현재 마주해야만 하는 국제 정세의 흐름 속에서 평화를 배우게 된 점이 기억에 남는다. 청년 국제회의 세션에서는 다른 나라를 설득하거나 연대할 방법을 모색하면서, 평화가 결국 외교와 협상의 언어 속에서 구체화된다는 점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파주에서 시작해 나가사키와 대만, 그리고 제주로 이어진 이번 활동은 여기서 끝나지만, 우리가 직접 고민하여 얻어낸 문제의식은 이후에도 이어질 거라 믿는다. 좋은 배움의 기회를 주신 경기도와 국제푸른나무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함께 답사를 다녀온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평화를 이야기하는 피스메이커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평화를 찾아서 대만으로: 대만 청년평화대사 소감문> 여혜연 참가자 들어가는 말 나에게 이번 대만 청년평화대사 활동은 단순한 해외 탐방이 아니었다. 작년 중국에서 생활하 며 말 한마디에도 조심스러워지는 양안관계의 분위기를 직접 경험했다. 그 속에서 공존의 어려 움과, 이러한 복잡한 관계 속에서 평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 일인지 깨달 았다. 이러한 경험은 자연스럽게 양안관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양안관계의 직접적인 현장 에서 그곳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바람이 나를 이 캠프로 이끌었다. 이렇게 양 안관계 그리고 평화통일을 진지하게 고민하고자 모인 우리의 여정은 지난 6월 파주 DMZ에서 시작되어, 7월 대만 타이베이로 이어졌다. 대만에서 무엇을 얻어갈 수 있는가는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가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2년 전에도 한 달간 타이베이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중국어 공부와 관광이 주 된 목적이었기에, 얻은 것은 기초 회화 실력과 몇몇 추억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이번 대만 청년 평화대사로서의 방문은 단순한 체험을 넘어선 책임감을 안겨주었다. 이번 활동을 통해 나는 정 치적 측면뿐만 아니라, 양안관계를 보다 더 넓은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고자 했 다. 특히 사전에 공유된 일정표를 보며, 이번 3박 4일이 2년 전 한 달 간의 경험보다 훨씬 깊이 있는 지견을 안겨줄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기에 더욱 설렘을 안고 갔다. 스펀에서 평화를 날리다 대만에서 첫 번째 일정으로 천등을 날리기 위해 스펀(十分)을 방문했다. 이 지역은 과거 탄광 마을이었지만, 현재는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마을 곳곳에 철로가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천등을 날릴 때 실제로 기차가 지나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우리 대만팀은 4인 1조로 빨간 천 등을 받아 각 면에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소망을 적고 하늘로 띄웠다. 당시에 비가 오는 흐린 날이었지만, 날씨와 무관하게 천등은 아주 높이 잘 올라갔다. 수많은 천등이 하늘로 떠오르는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현실적인 질문도 떠올랐다. “날아간 천등이 환경에 악영향을 주지는 않을까?”라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지역 주민들이 이를 수거하고 보상까지 얻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 정도 환경을 고려하면서도 지역 경제를 살 리는 지속 가능한 관광이라는 점에 마음에 크게 와닿았다. 그렇게 비를 뚫고 떠오른 우리의 평 화 소망이 오랫동안 하늘에 머물며 언젠가 현실로 이어지길 바랐고, 호텔로 가는 길에도 마음이 여전히 철로 위에 머무는 듯했다. 새롭게 알아가는 대만 대만 청년평화대사 프로그램 나흘 동안 총 다섯 번의 강의를 들었다. 이번 대만 현지 강의는 중국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더욱 의미 있고, 동시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경험이었다. 그동 안 ‘대만’이라는 나라에 주목해볼 생각을 많이 하지 못했던 스스로가 조금은 부끄럽기도 했다. 그렇게 모든 강의를 온전히 배움의 자세로 들었다. 강의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내용은 대만인이라는 집단적 정체성인 ‘대만의식’이 아직도 만들 어지고 있는 과정이라는 점이었다. 실제로 대만은 여러 시대를 거치며 외세의 지배와 다양한 집 단의 이주, 그에 따른 갈등과 협력이 반복되면서 오늘날 대만 사회는 민남인, 객가인, 외성인, 원 주민 등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문화로 함께 공존한다. 이런 내부의 다양성 때문에 대만의 현 대 정체성을 한 가지로 단순화하기 어렵다는 점이 강의에서 깊은 인상을 주었다. 단순히 ‘중국인 가 대만인가’라는 이분법적 시각으로는 대만 사회의 다면성과 그 깊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고 생각한다. 대만의 정체성은 복잡한 역사적 경험과 상호작용 속에서 만들어져 왔으며, 이는 ‘하나 혹은 두 개의 중국’이라는 생각을 넘어서서 바라봐야 할 문제이다. 더 나아가, 양안관계에 서 대만은 단순한 정치적이나 경제적 논리에만 치우치지 않고 내부 여러 집단의 다양한 목소리 와 감정까지 폭넓게 이해하고 공감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어서 입법원을 방문했을 때 들었던 린천푸 국제처장님의 강의는 이번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중 하나였다. 국제처장님은 과거 주한 대만 총영사로 근무하며 겪은 경험들을 사진과 함께 소개해 주었고, 이를 통해 대만과 한국의 자매 도시 현황과 양국 관계의 역사에 대해 새롭 게 배울 수 있었다. 강의에서는 양안관계의 긴장 속에서도 대만이 민주주의와 평화를 지향하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음을 강조했으며, 한국과 대만 모두 복잡한 국제 환경 속에서 주권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과거 단교 이후 양국 간에 좋지 않은 감정이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케이팝과 드라마 같은 한류 문화가 민간 차원에서 관계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일화였다. 이를 통해 문화가 갖는 힘을 다시 실감할 수 있었고, 나아가 평화통일 역시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 문화적 소통과 시민 간 교류 속에서 길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국제처장님께서 준비해 주신 입법원 기념품을 받았 을 때였다. 퀴즈를 통해 얻은 볼펜과 강의가 끝난 뒤 나눠 주신 배지는 이번 활동을 더 특별하 고 의미 있게 만들어준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대륙위원회 · 2.28국가기념관 대륙위원회를 찾았을 때는 조금 긴장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던 기억이 난다. 양안관계를 직 접 다루고 쉽게 방문할 수 없는 공간인 만큼 무거운 주제를 가까이에서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됐다. 이곳에서 대만이 현상유지를 바탕으로 자국의 주권을 분명히 지키려 는 입장과 노력을 들을 수 있었다. 현장에서 간담회를 통하여, 새로운 관점에서 대만이 갈등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긴장 속에서 제도적으로 정책적으로 평화를 관리하며 주체적으로 긴장을 다루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하였다. 이어 방문한 228국가기념관에서는 대만 현대사의 아픈 상처를 마주할 수 있었다. 국가폭력 사 건인 2.28 사건의 희생자를 기리고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이 공간은, 과거를 외면하지 않고 기 억하려는 대만 사회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특히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깨닫는 기회가 되면서, 민 주주의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닌, 수많은 시민들의 희생과 끈질긴 저항 위에 세워진 것임을 다시 실감했다. 특히 대만 정체성에 관한 강의에서 배운 이론들이 직접적인 역사 공간 방문과 맞물리면서, 지 식이 단순히 머리 속 정보로서 머무르지 않고 경험으로 확장되는 의미 있는 학습의 순간이 되었 다. 더 나아가 2.28 사건은 한국의 5.18 민주화 운동과 제주 4.3 사건과 교차하며, 양국이 과거의 아픈 역사와 마주하는 방식이 결국 민주주의와 평화 구축의 중요한 출발점임을 상기시킨다. 실 제로 기념관에 한국의 5.18 민주화 운동 전시가 진행 중이었지만, 시간 관계상 제대로 둘러보지 못 하여 아쉬움을 가진 채 떠나야 했다. 결과적으로, 대만이 현재도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한 진 정한 의지를 멈추지 않는 이유가 바로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역사적 상처에 있다고 생각한다. 중정기념당 이어 방문한 중정기념당은 타이페이101 타워와 함께 대만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로, 웅 장한 규모에서 대륙풍 건축물의 느낌을 받을 수 있어 매우 인상적이었다. 또한 여름의 푸릇푸릇 한 풍경과 잘 어우러진 깔끔한 공간이라 기억에 오래 남았다. 날씨가 좋아 많은 팀원들이 사진을 찍기도 했다. 중정기념당은 장제스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곳으로, ‘중정’은 장제스의 본명에서 유래했다. 흥미 로운 점은 2007년 민진당이 장제스의 영향력을 축소하고자 기념당 명칭을 ‘타이완 민주기념관’으 로 바꾸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대만의 정권 변화에 따라 기념당의 의미와 사회적 시각도 달 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즉, 어떤 사람에게는 이곳이 ‘독재자를 기리기 위한 장소’로 비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보면서 정치적 상황이 역사적 평가와 사람들의 인식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지만 동시에 씁쓸하게 느껴졌다. 내부로 들어가 1층 전시실을 짧게 둘러보았다. 장제스 관련 전시였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의 부 인 쑹메이링에 대한 이야기가 더 인상 깊었다. 그녀는 쑨원의 친구이자 후원자의 딸로, 뛰어난 언 어 능력과 외교 감각,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남편 못지않게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했다. 중국과 대 만 국민당의 대외관계는 물론,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이가 없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꼽히지만, 탐방 중 팀원들과 농담처럼 “그 덕분에 105세까지 장수하셨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웃기도 했다. 그 시대 여성으로서, 쑹메이링의 삶과 힘이 참 인상적이고 멋지게 느껴졌다. 대만국립고궁박물관 이번 대만 청년평화대사 활동 중, 시각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공간은 대만 고궁박물관이었다. 이 박물관은 세계 5대 박물관 중 하나로 꼽히며, 소장품을 모두 관람하려면 약 10년이 걸린다는 말도 있다. 고궁박물관의 대부분 유물은 베이징 자금성에서 장제스가 대만으로 옮긴 것들이지만, 이 유물들을 중국의 유물 대신 ‘대륙의 유물’이라고 부른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했던 것은 취옥백채였다. 과거 중국사를 배우며 눈​여겨봤던 취옥백채를 직접 관람할 수 있어 매우 뜻깊었다. 중국에서 배추는 부를 상징하는데, 이를 정교한 옥으로 표 현했기에 중국 대륙에서도 이 작품을 보러 많은 관광객들이 온다고 한다. 그 밖에도 청나라 시 대의 다양한 유물들을 감상했는데, 아름다운 디자인과 색감에 감탄하며 청나라 문화 전반에 대 한 흥미가 생겼다. 마무리하며 3박 4일은 짧았지만 그 안에서 얻은 배움은 결코 작지 않았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 은 노력이 필요하며, 그 과정에서 얼마나 큰 희생이 따르는 지를 직접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양안 관계와 한반도의 상황이 역사적으로 겹쳐 보이면서, 우리가 마주한 과제의 무게도 실감하게 되었 다. 무엇보다 청년들이 던진 다양한 질문과 시각을 접하며 양안관계와 평화를 더 입체적으로 바 라볼 수 있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청년들의 관심과 참여가 평화의 길을 여는 가장 든든한 출발 점임을 확인했으며, 나 또한 그 여정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